Noise Cancelling

2019.6.19 - 7.18 

Project 1. 전시후원작가 

안광휘

Kwanghwee AHN

시는 형상은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물질(텍스트)의 배치와 묘사를 통해 재현한다는 점에서 회화 등 다른 예술 장르와 맞닿아있다. 시 이야기로 서문을 여는 이유는, 작가가 라임과 시론1을 다루는 힙합 음악을 주 매체로 하고 있고, 이미지와 현상을 관찰하는 작가의 태도와 그것을 조형화하는 과정이 시의 방법론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간 일상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물체들의 쓰임을 교묘하게 전복시키는 방식을 통해 서사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외부의 소음을 없애기 위해서 그것에 상쇄하는 음파를 만들어내는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이라는 기술적 개념을 차용한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이 개념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순응하기보다는, 소음을 잠재우기 위해 역설적으로 발생하는 음파처럼 삶의 굴곡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작가의 선언을 상징적으로 내비친다.


안광휘의 작업에서 가장 부각되는 요소는 힙합이다.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낸 2000년대 초 중반은 케이블 TV가 개통되며 다양한 콘텐츠가 미디어에 노출되기 시작하고,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이 급부상하여 정보교류의 여건이 물리적, 시간적 제약에서 벗어나면서 한참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거나 직접 제작한 음악을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 흐름과 함께 언더그라운드와 독립 음악 신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미주 교포나 유학생 등이 아니고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힙합의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아졌다. 작가는 또래 친구들과 힙합 동아리를 창설한 적도 있고, 오랜 시간 동안 직접 힙합 음악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힙합은 작가에게 가장 오래되고 익숙한 재료이다. 작가가 활용하는 것은 힙합의 음악적 형식만이 아니다. 안광휘는 인터넷에서 실체 없이 부유하고 끊임없이 생산되는 이미지와 미디어의 흐름에 대해서 연구해왔는데, 이를 작업으로 소화하기 위해서 힙합의 방법론을 차용한다. 힙합은 미국 흑인 사회의 단면에서 시작되어 여러 문화를 수용하며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해왔다. 힙합은 기득권층에 대한 반항심과 사회 비판적 정서에서 시작됐지만, 딱히 자본주의를 거스르지 않고, 주류 문화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도 않는다. 안광휘는 작가로서의 삶과 온라인에서 유통되고 부유하는 여러 이미지를 대하는 자신의 반응과 생각을 힙합 문화의 양면적 태도에 비유한다.


인쇄기술의 발전은 정보의 범위를 확장했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은 이미지의 유통과정을 단축시켰다.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이미지가 유통되는 과정은 기존보다 확연히 가볍고 손쉬워졌다. 바라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인간은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고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앉아서 손가락만 움직여도 무수한 이미지와 정보가 쏟아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작업을 해야 하는 걸까. 안광휘의 작업은 디지털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이야기 전개를 풀어놓고 조형화하는 과정만큼은 이미지가 캔버스로 옮겨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가 제시한 화면 위에서 여러 레이어가 안무하듯 그 사이를 오고간다. 서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힙합음악이 펼쳐지고, 가사와 함께 화면을 가득 메우는 영상은 그 자체만으로는 존재성이 모호하지만, 텍스트에 운동성을 더하는 배경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의도가 확실한 가사(텍스트)와는 달리, 화면에 펼쳐지는 이미지는 언젠가 스쳐 지나간 적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인지해버리는 것들이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연고 없는 풍경들도 단지 바라보았다는 이유만으로 내 삶 속에 들어와 심상이 된다. 작가의 영상 속에 펼쳐지는 장면들은 도발하듯 등장하는 스케치를 제외하고 인터넷 게임 등 대중문화에서 파생된 밈(meme)2들이나, 셀프카메라, 어디론가 끊임없이 향하는 차 안을 찍은 영상처럼 즉흥적인 장면들로 뒤엉겨있다. 익숙한 그림과 장면들은 어딘가 변형되고 가공됐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그래왔다는 듯 태연하게 스크린 위에 흐르고, 작가는 그렇게 교차하는 장면들 사이에 자신만의 서사를 덤덤하게 풀어놓는다. 마치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시간에 대항하듯 말이다.


<노이즈 캔슬링>은 블록파티(Block Party)3의 현장으로서 사루비아다방을 점령한다. 블록파티는 힙합의 시발점이자 형식에 맞추기 보다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으로 창작을 하고 집단적 성격이 강한 장르 고유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문화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했듯, 힙합이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고 결과물에 대한 공을 서로에게 돌리는 반면, 전시 역시 많은 사람의 참여로 만들어지지만  그 노고가 온전히 모두 드러나는 일은 드물다. 작가는 드러나지 않던 부분을 부각시키고 기존의 시스템을 전복시킬 유쾌한 대안으로서 힙합을 제안하고, 미술 전시장에 커뮤니티 파티인 블록파티를 펼쳐놓음으로써, 전시를 만든 사람 그리고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관람객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꾀해본다.


문소영|사루비아다방 어시스턴트큐레이터



1. 시론(詩論)과 시론(時論)

2. 밈 (meme): 화제인물, 대중매체, 사상 등의 모방을 통해 습득되거나 드러나는 문화 요소.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내용을 일컫기도 한다. 주로 특정 인물 혹은 사건을 풍자하기 위해 생산되거나, 원본의 맥락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가진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3. 블록 파티 (Block Party): 주로 지역 주민들이 모여 개최하는 행사를 칭한다. 블락(block)이라는 명칭은 도로나 건물을 막고(block)서 진행되는 행사의 형식에서 유래됐다.

남부 브롱크스의 블록파티: 1970년 뉴욕 남부 브롱크스(South Bronx)는 도시 재개발 계획의 실패로 인해 낙후되고 마약, 갱, 방화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우범지대였다. 잦은 방화로 인해 지역은 황폐해졌고 사람들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해야 했다. 브롱크스에 머무는 사람들은 주로 아프리카나 남미 이주민들이었는데, 당시 주류였던 펑크(Funk)와 디스코 그리고 고향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삶의 고통을 잊어보려 했다. 남부 브롱크스의 블록파티는 힙합의 토대가 된다. 최초의 힙합 파티는 신디 캠밸(Cindy Campbell)과 디제이 쿨허크(Clive Campbell a.k.a. DJ Kool Herc) 남매가 개최한 ‘Back to School Jam’으로 알려져 있다. 쿨허크는 여동생의 생일 파티에서 두 개의 턴테이블을 번갈아 사용하여 음악이 끊기지 않게 하는 기술을 선보인다. 두 개의 턴테이블을 사용한 이유는 춤추기 좋은 간주(break) 부분을 끊임없이 재생하기 위해서였는데, 여기에서 브레이크 댄스와 비보이가 파생되었고, 흥을 돋우는 역할인 MC가 등장하고 이는 랩의 시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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