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
(Don't) Look at It
2020.7.1 - 2020.7.30
Project 1. 전시후원작가
김방주
Bangjoo KIM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 전시전경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 전시전경
(위) Art-Apple, 2016/2020, ceramics, plastic crates, an electronic scale, variable dimensions/ (아래) 독일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의 전시장 작품 지킴이 노동수칙, 137.3×36.2×93.6cm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 전시전경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 전시전경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 전시전경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 전시전경
Project-Price, 2016-2020, digital print on chiffon scarves, catalog, variable dimensions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 전시전경
Art-Apple, 2016/2020, ceramics, plastic crates, an electronic scale, variable dimensions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 전시전경
(좌) Self-Portrait, 2020, pencil drawing on a disposable paper toilet seat cover, 49.5x35 cm/ (우) Captured Cut, 2020, 40" monitor, 27" monitor, Mac mini, a keyboard, a computer mouse, a print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 전시전경
《그것을 보거나, 보지 마시오》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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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루비아 큐레이터 세 명의 다른 시선으로 이번 전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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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엄격하고 강한 틀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틀에 갇혀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쫓는 예술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모순과 불편함이 혼재한 제도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은 다양한 결핍을 겪게 되고, 작가들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억압된 의식과 무의식의 욕망을 해소하는 방식을 찾는다. 인간은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예술의 역할에 대한 의문은 김방주에게 매우 중요한 화두이다. 그는 독일 유학 생활 중 5년 동안 미술관의 지킴이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어떻게 예술로 구현할지 고민했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한 예술가는 미술관이란 틀거지에서 무엇을 꿈꿨을까. 일상과 예술 사이에 끼어든 제도의 불편함은 작가에게 자극과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수없이 많은 생각 끝에 새로 주어진 이 공간을 자기 영역으로 표시하며, 이것은 스스로 꾸려나가는 일인극을 떠올리게 한다. 이 특권을 활용하기 위해 사루비아 전시공간을 극을 올리는 무대로써, 그리고 그간에 해왔던 기존 작업(하나의 특정한 움직임이나 목표를 세워놓고 수행했던) 몇몇을 극을 위한 무대 세팅이자 소품으로 구상한다. 그는 과거에 경험했던 시간과 공간 속에 축적된 기억을 체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창작물을 배치하기 위해 아주 느린 태도로 사루비아 공간을 탐색하고 습득해나간다.
작가는 앞으로 펼쳐질 무대를 상상하고, 공간에 묵상하며 산책할 동선을 그린다. 그 동선에 예술과 노동의 모순과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두 유형 ‘Art-Apple, Project-Price, Captured Cut’,‘노동수칙-안무지시문’의 오브제를 배치하였고, 습득한 서술(노동수칙)의 각도를 자유롭게 이동시키기 위해 자신의 총체적인 모습을 관객이 전지적 시점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세 역할을 연결하는 촉매제로서 퍼포머가 등장한다. 이 퍼포머는 미술관 지킴이 역할을 수행하며 특성화된 이 공간의 환경(바닥, 소리, 부피 등)과 긴밀하게 호흡을 맞추며 공간과 하나 된 몸처럼 움직이는 효과를 꾀하려고 했다.
작가는 스스로의 내밀한 언어와 질문이 순환될 수 있도록 생각의 프레임을 열어놓는다. 관객의 반응이 극 속에 숨어있던 내러티브를 작동시키면, 시공간의 여백이 채워지고 중첩되며 스토리텔링이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아직 펼쳐지지 않은 이 극을 응시하는 또 다른 관객으로서 질문하게 된다. 이 극을 통해 김방주의 고집스러운 ‘자기 근거’ 찾기는 ‘나’라는 정체성을 강탈해가는 자본에 맞서 실효성을 거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몸과 정신이 걸쳐있는 이 세상에 스스로를 최소화하는 일인극으로 순수한 정신성을 유도하려는 것일까? 앞으로 김방주의 ‘또 다른 몸’의 영역이 어떤 지표를 찾아나갈지 기대해 본다.
이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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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유를 형상화하는 사람이다. 작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겠지만, 작업과 작가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설명해야 할 때면 늘 말을 얼버무리게 된다. 비물질인 사유에 값을 매기고 소비한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유는 작업을 통해 전시장에 드러나는 순간부터 소비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소비는 경제적, 물리적, 그리고 경험적인 모든 형태의 소비를 포함하고, 소비된다는 것은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하나의 대상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전시와 작업에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되는지는 누구도 단정 지을 수 없다. 만약 가치가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산정되는 것이라면, 작가와 작품은 전시를 통해 드러난다. 미술관은 관람료를 받는다. 그 관람료를 산정하는 것은 전시의 질보다는 운영비처럼 관객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경제논리이다. 대부분의 대안공간과 신생공간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전시에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자본은 예술의 가치를 설명하는 기준이 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가는 창작 환경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같은 어려움을 마주한다. 예술가는 개성과 창의성을 지닌 존재이지만, 이러한 부분이 경제적 생산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고려되지는 않으며, 신분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소속 기관 없이는 통장이나 신용카드조차 개설하기 어렵다. 누구보다도 주체적이고 구체적인 개인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추상적인 존재인 것이다.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유토피아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김방주는 전시장 지킴이가 예술가로서의 입장을 지키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판단하여 오랜 시간 미술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작가는 사루비아 전시 기간 동안 지킴이의 역할을 수행하고, 퍼포머로서 경제적인 논리에서 해방된 작업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전시장 안에는 과일처럼 무게에 의해 값이 매겨지는 도자기(Art-Apple), 프레임을 기준으로 케이크처럼 조각나 판매되는 영상(Captured Cut), 이미지의 화질이나 원단의 품질이 아닌, 프린트된 음식이 실제로 소비된 가격에 판매되는 스카프(Project-Price)처럼 어딘가 엇나간 환율이 적용된 작품이 들어서 있다. 작가는 관객에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작품을 소비하면 그만큼의 비용이 지킴이로 일하는 작가의 임금으로 지불되고, 그만큼 전시에서 관람 가능한 부분이 사라지는 시뮬레이션을 제시한다. 실제 판매가 이루어지진 않지만 관객은 간접적으로 자본의 주체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자본은 예술을 속박하는가, 성장시키는가? 예술가의 자율성을 지켜주는 것은 무엇인가?
문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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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노동’은 오랜 세월 예술가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매력적인 주제이자,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는 논제이다. 창작의 과정에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며, 해소하기 힘든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예술과 노동의 가치를 결부시켜온 그간의 시도들과 조금 다른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 김방주는 독특한 방식의 노동을 상상하고 수행한다. 행위의 목적과 성과가 불분명한 반(反)노동적인 수행은, 예술적 사유의 깊이를 가늠하듯 몸을 쓰고 생각을 걸러내는 극기(克己)에 가깝다. 진정한 예술적 노동은 자기 자신을 위한 노동이며, 그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과 예술적 가치가 수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노동과 자본의 사회구조적 경계를 넘나들며 미학적 대상으로서의 예술가의 창작 행위를 주목했고, 그 행위는 예술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예술적 상상의 근원이 된다. 노동집약적인 수행의 과정은 볼 수 있는 흔적이 되어 온전히 작업에 담기며, 낯선 가치와 시각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비(非)물질적인 최소한의 개입으로 예술적 사유와 노동을 결합시키고 사회적 생산물로서의 예술작업을 자연스럽게 도출한다. 오랜 시간 몸과 생각으로 체화된 김방주의 ‘그것’은 단순한 형태로 존재하거나 읽히지 않는다. 비(非)예술적인 형태로, 반(反)노동적인 행위로 예술과 사회적 현실의 관계를 조명하고, 불편한 지점에 스며들어 작지만 의미 있는 차이를 인식시킨다.
‘예술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인가’, ‘예술가로서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예술 작업이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까지인가’, 예술, 예술가, 예술작품의 역할과 가치를 되뇌는 예술가의 흔적을 나는 이번 전시에서 보았다.
황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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