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있었던 일인데

You know, it might actually happen

2018.10.24 - 11.23 

Project 1. 전시후원작가

이민선

Minsun LEE

빗겨서 우리는 만난다


여기, 사뭇 진지한 얼굴로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는 한 인물이 있다. 자신을 예술가라고 칭하는 그는 다소 상기된 얼굴에 심각한 어조로 자기 자신과 지금까지의 작업, 작가로서 작업하는 방식에 관한 소개를 진지하게 시작한다. 장면 하나하나를 지날 때 마다, 그의 표정, 그의 말,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새어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이내 곧 예술에 대한 생각, 예술가의 일상, 예술적 영감이라는 것에 대해 털어놓고, 작업 없이 살 수 없는 자신의 삶과 의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영상을 보면서, 왠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온다. ‵왜 그러냐′고 되묻는 그의 마지막 한마디에 상대방의 진지함을 가볍게 웃어넘긴 스스로에 대한 반성인지, 나를 포함하여 예술에 너무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온 주변 세상에 대한 원망인지,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또 다른 세 개의 영상에 인물이 있다. 어떤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얽혀 있는 이 영상은 내용의 전부를 쉽게 내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있는 사진, 소설을 단서 삼아, 간신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도 예술은 늘 문제다. 예술을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은 인물의 수만큼이나 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심각하고, 불편하며, 신경 쓰이는 무엇이겠지만,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은 주제고 특별한 의미를 생각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배어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 자체다. 한때 청년 예술가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작업과 노동, 예술과 현실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던 지난 몇 년간을 잠시 떠올려본다. 치열했던 삶의 현장에서 예술이라는 것을 놓지 않았던 이들의 시도도 떠올려본다.


이민선은 개인이 속한 세상과 세상의 논리에 맞추며 살기 어렵지만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예술가의 삶, 그 사이를 탐구해왔다. 한 사회의 개인이자, 예술가로서 살아가면서 느낀 그의 고민은 자신을 세계에 맞추거나, 반대로 세계를 자신에게 맞춰보려는 여러 시도로 이어지는데, 작가는 이를 퍼포먼스를 통한 영상 작업으로 표현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사진, 소설, 영상 세 매체를 넘나들며 삶의 주변에서 관찰한 인물들에 관한 허구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를 위해 먼저 그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24시간 동안 41분 간격으로 눈앞의 광경을 찍어 인화된 사진으로 남긴다. 다음으로 필름카메라로 얻은 36컷의 사진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마지막으로 사진에서 누락된 정보를 채워나간 소설을 바탕으로 시간의 서사와 이미지를 입힌 영상을 제작한다. 이렇게 시간을 물질에 담은 사진, 누락된 시간을 메운 소설, 언어를 시간에 옮긴 영상은 실화와 픽션, 경험과 기억, 편집과 재연을 오가며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서로간의 느슨한 관계를 드러낸다.


각각의 매체가 전하는 내러티브는 사물과 인물, 상황, 시점 간의 인과 관계, 혹은 불명확하지만 충분히 예측 가능한 지시적 관계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생성, 변형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야기의 진실과 허상, 작가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유영하면서, 예술가의 삶과 예술의 가치, 의미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와 소소한 대화로 가득한 평범한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위치시킨다. 더욱이 작가는 이 모든 내용이 정답 없는 열린 결말임을 암시하는 장면을 영상의 구조 안에 의도적으로 삽입한다. 작품의 말미에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관객과 시선을 교차하는 순간은, 보는 이에게 이것이 모두 연출된 것임을 알린다. 특히 그의 영상 작업 전반에는 희극적 요소를 동반한 장면들이 곳곳에 산재하는데, 여기서 웃음은 공감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화면 밖으로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관객의 감정변화를 이끌어 내는 중요한 요소다. 그로 인해 화면 안에 흐르던 시간과 서사는 자연스럽게 모니터 밖을 비집고 나와 관객에게 말을 건다. 작품과 관객의 거리가 거의 맞닿은 순간, 작품 속 서사는 솔직하고 대범한 질문이 되어 관객을 향한다. 기대는 빗겨나가고, 카운터펀치를 한 방 먹은 셈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된 방을 누군가가 흩뜨리는 것도 그의 정리 방식의 한 부분’이라는 작품 속 책의 한 구절처럼, 전시 안에 제시된 세 가지 매체는 어쩌면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할지도, 어쩌면 더 많은 의미를 누락할지도 모르나, 이미지와 언어 사이에서 해석의 실마리를 찾는 관객과 부단히 거리를 맞춰가며 저마다의 의미 전달을 시도한다. 세계 안에 자신을 맞추며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섯 인물들의 관계 속에 풀어낸 고백 같은 그의 작업 속에 여전히 예술에 대한 답은 없다. 다만 기대를 빗겨서 마주한 생각들을 곱씹어 볼 때, 그것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황정인|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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