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 경

The Thermo° scape

2019.12.11 - 2020.1.10 

Project 1. 전시후원작가 

이의성

Uesung LEE

온도와 습도는 작업의 환경과 작품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관적이며 물리적인 요소이다. 뜨겁고 차가움의 정도를 말하는 온도와 습하고 마른 정도를 의미하는 습도는 측량의 수치에 앞서 인간의 감각이 가장 선험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환경요인이기도 하다. 이의성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온습도계가 발명되기 이전 주관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감각의 기준점을 조각과 설치작업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한겨울 지하 전시장의 전시를 준비하며, 한여름 무더위 속 지하 작업실에서 체감해야 했던 온습도의 물리적 현상이 이번 전시의 단서가 되었다. 온습도의 차이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몸을 통해 체감할 수 있는 상대적인 반응이며, 우리의 감각은 겨울에 추위를, 여름에 더위를 더 민감하게 느끼고 반응한다. 18세기의 과학자들에게 온도의 기준점은 항상 같은 온도에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온도의 기준이 달라지면 온도의 정의도 달라졌다. 습도 또한 물리적 성질과 모양의 변화로부터 직접 측정하는 방식을 이용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온도° 경(thermo° scape)”은 뜨거움과 차가움의 차이를 만드는 시각적 심상이자 현상을 의미한다. 추위와 외풍을 막기 위한 기능적 구조물과 조각적 오브제가 전시장에 배치되었다. 창문이 설치된 내벽은 전시장의 안과 밖을 분리하며 빛과 공기의 온도차를 발생시킨다. 램프로 비춰진 창백한 형광 조명과 촛불의 누르스름한 불빛은 밝고 어두움을 대비시키며 색온도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인식시킨다. 불꽃이 타오르는 벽난로와 라디에이터는 실내 공기를 따뜻하게 느끼도록 작용한다. 사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비닐 막은 시선을 막고, 빛과 공기의 순환과 변화를 감지하는 매개가 된다. 사실상 이 모든 장치들은 전시장 안의 물리적인 온도상승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작가는 물리적인 온습도의 개념을 이용해 빛과 바람, 공기가 머물고 있는 장소, 이로 인해 발생되는 촉각, 청각, 후각, 시각이 상호 작용하며 움직이는 이미지, 상상과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시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열린 오감으로 감응하는 풍경은 매순간 새로운 것이 되며, 사라져 버리는 일시적인 경험이 된다. 주관적인 ‘온도차’가 발생하도록 다양한 감성과 관점을 담아 낸 풍경이다.


최근 들어 작가는 전통적인 조각의 개념을 전치시키는 ‘포장’에 주목한다. 표면적으로 우선 포장은 대상을 외부와 분리시킨다. 내용물을 감싸며 안과 밖을 명확히 구분 짓는 장치이다. 따라서 포장의 품질과 모양새는 내용물의 가치와 상태에 비례해 결정되며, 반대로 포장을 통해 내부 대상의 속성을 완벽하게 숨길 수도 있다. 또한 포장은 효율적 기능을 위해 견고하고, 가벼우며,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한 재료를 사용한다. 포장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과 비용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가시화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포장은 역설적으로 가장 쉽고 편리하게 부피를 만드는 행위이다. 생산에서 소비, 폐기에 이르기까지 효용의 가치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소모되는 ‘일회성’의 개념에 부합하는 매체이자 조형방식이다. 이와 같은 포장이 지닌 비(非)조각적인 속성을 전환하여, 작가는 무겁고, 쉽게 손상되며, 재생이 가능한 에어캡, 일명 뽁뽁이를 작업의 맥락으로 가져왔다. 뽁뽁이의 재료로 사용된 밀랍(beeswax)의 벌집구조는 완벽한 육각형의 배열로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는 가장 경제적인 구조이자, 동시에 가장 균형 있게 힘을 배분하는 안정적인 구조로 포장재에 활용되기도 한다. 뽁뽁이의 모양처럼 원래 원형으로 만들어진 벌집은 벌의 체온에 의해 밀랍이 녹으면서 모양이 완벽한 육각형으로 변하게 된다. 반복적인 노동과 정교함을 요하는 캐스팅(casting) 방식으로 제작된 뽁뽁이는 바람을 차단하고, 빛을 투과시키며, 열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사용되지 않은 롤, 타월, 뭉쳐져 버려진 뽁뽁이를 연상시키는 초, 알갱이들은 가변적인 조형적 특성을 지닌 조각이 되어 물질의 순환적 가치와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


세상의 많은 것은 다르다. 그리고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러나 당연해 보여 인식하기 힘든 것들 또한 많다. 예술에 관하여, 특히 작품이나 작업의 태도에 대해 우리는 상당히 추상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기술한다. 또한 예술작업에 대해 추상적인 물음을 주고받는다. 이의성에게 예술의 추상적인 개념과 가치는 시각적으로 보다 구체화되고 직접적으로 재현될 수 있어야 하는 대상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예술에 대한 다른 생각과 물음의 가치는 여전히 존재한다. 조각의 또 다른 형태를 찾고, 작업의 과정과 물리적 환경적 조건을 인식시키는 이의성의 작업은, 필요하지만 간과되었던 예술의 개념과 가치를 드러내고, 숨겨진 세상의 질서와 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이 될 것이다.


황신원|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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