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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7 - 11.16

Project 2. SO.S (Sarubia Outreach & Support)

애나한

Anna HAN



SO.S(Sarubia Outreach & Support)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가 2015년부터 새롭게 시도한 중장기 작가지원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작품, 전시와 같은 창작의 결과물 이면에 감춰진 작가들의 수많은 시간과 노력, 과정 속에 큐레이터를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여 그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또 다른 발전 가능성을 모색함으로써, 작가의 창작활동을 중장기적으로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23년 7월 공모를 통해 A, B, C 그룹 총 6인의 작가가 선정되었고, 이번 전시는 SO.S 2023-2026 프로그램의 진행결과를 보여주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피드백을 구하는 자리이다.


C 그룹. “신진과 중진 사이에서 작업의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는 작가”


- 35세 이상 45세 이하의 작가 (1988년생-1978년생) 

- 개인전 3회 이상의 자격을 갖춘 작가 

- 상업갤러리 전속 작가 지원 가능


SO.S의 C그룹 지원은 독특한 조형 언어를 토대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작품이 소개되었으나, 반복적인 노출로 고착된 자신만의 조형 언어 안에서 한계를 느끼며, 작품의 형식적 고찰과 주제 확장을 고민하는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이 작가군은 신진을 거쳐 중진작가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C그룹의 프로그램은 작가의 기존 작업을 다시 돌아보며, 작품 포트폴리오 및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을 제공하여 변화를 찾을 수 있는 지점을 함께 찾아간다. 아울러 기획자, 평론가 등 전문가와의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향후 작업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국내외 전시활동과 작품세계를 심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함께 모색한다. 


주요 진행일정

2023.7.     공모를 통해 1, 2차 심사를 거쳐 선정

2023.11    작업 크리틱 I 

2024.9      작업 크리틱 II 

2024.11    전시진행 미팅 I 

2025.8      전시진행 미팅 II

2025.9      전시진행 미팅 III    

2025.11    심층비평 진행 및 평론글 의뢰


참여 동기

공간에 대한 조형적 실험을 회화와 설치로 펼치며 나름의 예술세계를 형성해 왔다. 최근 몇 년간 정신적, 육체적 소모로 인한 슬럼프는 작가로서의 아이덴티티, 목적과 방향을 흔들었고, 작업 개념과 주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전시 참여가 거듭될수록 한정된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뽑아내고 설치하는 작업이 반복되었다. 작업에 관한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평가와 사고를 진전시킬 여유가 없었다. 상황적 여건과 직관에 따른 작업들을 실현시키고 전시 경력은 쌓여 갔지만, 나와 내 작업은 지향점을 잃은 채 소비되고 있었다. 중진작가로 접어드는 시점에 자극이 필요했고, SO.S 프로그램을 통해 내 작업을 되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


사루비아의 지원 방향

작가는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최근의 작업들을 스스로 멈추고 싶어 했다. 멈춰 서 보니 달려온 속도와 방향이 보였고, 쉬면서 채워야 하는 시간임을 작가는 알고 있었다. 조형적 사고와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작업 개념이 공간과 장소성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작가만의 온전한 감각이 그 공간에 조형적으로 스며들고 조율하는 시간과 과정은 매번 단축되었다. 점유하고 있는 공간에 내 작업을 확고하게 인식시키는 화려한 맛의 조형적 어휘들이 빠르고 익숙하게 사용되었다. 색다름의 변화와 차이를 강렬하고 매끈하게 시각화하는 요소들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공간을 매개로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작업 유형은 추상적 조형 원리를 통한 시지각의 감각으로 소통하고, 이 과정에서 맥락과 의미는 발생한다. 이번 작업은 사루비아와 작가의 시공간이 서로 스며들고 물들이는 충분한 시간을 거쳤고 익숙하지 않은 화법으로 풀어나갔다. 상반된 속성의 개념들이 만나는 중간지점의 단계적 차이, 다양한 감각의 층위를 드러내고자 했다. 작은 차이가 만드는 예민한 감수성을 자극하고, 유연하면서도 즉흥적인 요소를 개입시켰다.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관계를 인식하고 어우러짐을 발견하고 읽어내도록 빈 공간, 숨은 공간, 채울 수 있는 공간의 존재와 기능은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다.



시간과 공간은 말을 한다.



공간마다 고유의 냄새와 소리, 빛이 존재한다. 어둠과 고요함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감각은 더 예민하다. 공간의 감각적 경험은 인간이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을 동원하여 공간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말한다. 단순히 공간의 형태나 기능을 넘어 빛의 변화, 소리의 울림, 재료의 질감, 온·습도, 냄새 등이 유기적으로 공간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공간에 서사를 담아 보려는 시도이다. 물리적인 지하 ‘공간’과 15년 동안 107회의 전시가 만들어진 ‘장소’†로서의 ‘사루비아’가 작업과 서사의 대상이다. 시공간의 중첩을 통해 공간이자 장소로서의 사루비아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로 변모되었다. 특정 캐릭터로서의 속성과 즉물적 특징들이 열 개의 시구로 번안되어, 의인화된 한 편의 시가 되었다. 하나의 문장은 한 작품의 제목이다. 오감을 통한 연상작용은 또 다른 시공간의 기억을 상기하는 ‘이중 지시(Double Deixis)’††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오늘 처음 온 곳인데, 어제의 냄새가 난다.

공기는 침묵했지만, 기억이 그의 침묵을 깼다.

내가 떠난 자리에서 누군가 아직 숨 쉬고 있다.

틈새의 빛은 침묵했고, 어느새 나는 그 빛의 틈에 있었다.

빛이 나를 붙잡았지만, 그림자가 저편에서 웃는다.

떠난 뒤에도 그 시선은 이 어둠속에 머문다.

어둠을 찾는다, 어둠은 나를 찾는다.

눈을 감자, 네가 더 선명해졌다.

나는 살아 있으나 숨 쉬는 건 내 안의 너였다.

마주 본 순간, 난 너였고 넌 나였다.



빛과 그림자, 소리, 냄새, 온도와 습도, 질감, 색채가 오감을 자극하고 상호감응하며 시선은 움직인다. 먼저 대상을 선택하여 물리적인 공간 구석구석을 관찰·발견하기 시작한다. 가장 습하고 냄새나는 숨겨진 세 곳의 평면도가 다양한 물성과 톤으로 검은 형상을 드러낸다. 그림자를 감지하기 위한 빛, 빈 공간을 인식시키는 투영, 정적을 일깨우는 사운드, 감정과 기억을 소환하는 냄새는 모두 감각을 일깨우는 무게 없는 존재들이다. 예술가의 감각과 직관을 유사하게 그리고 예리하게 보고 느낄 수 있을 때, 시각적인 감응은 극대화된다. 확장된 지각의 스펙트럼은 다중적 관계를 만들고 유추의 단계를 거친다. 시간 또한 연결된다. 과거의 흔적으로부터 빛의 변화를 감지하는 현재의 순간까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선택은 관람자의 몫이다. 


이제 이차원의 회화는 삼차원의 공간에서 존재하는 맥락과 의미를 찾아 나간다. 캔버스와 벽화 작업은 표면 질감의 차이를 촉각적으로 극대화하였다. 무광과 유광, 거침과 매끄러움, 다층적 레이어, 균일한 톤과 그라데이션의 차이는 회화의 껍질과 환영적 깊이를 오고 간다. 붓질의 행위가 쌓아 올린 음각, 부조적인 껍질, 떨어져 나간 자국은 물질의 두께와 양감을 드러낸다. 부피를 감지하도록 벽면에 띄워진 회화는 삼차원의 입체가 되었다. 평면에 대한 개념이 공간으로 확대되도록 벽화는 빈 벽과 빈 공간에 가변적인 거리와 부피를 생성한다. 회화의 환영적 공간을 삼차원으로 전환하는 기제가 되었고, 이로 인해 시간은 지연되고 공간은 확장되었다.


시간 감각의 변화는 공간의 깊이와 연결된다. 비물질적인 환영의 공간 속으로 들어갈수록 조형적 요소들의 관계는 미묘하다. 이 공간적 깊이는 규정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다. 색채와 형태의 요소들을 쫓아 음미하고 분석하는 데 작동되는 시간 개념 또한 공간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동한다. 


높이와 거리, 빛과 어둠, 흑과 백, 투명도를 달리하는 막이 발생시킨 시각의 차이는 공간을 다면적으로 투영하고 시선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눈은 특정 형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미끄러지듯 그 사이를 돌아다닌다. 캔버스 작업의 경우, 물질적 표면에서 환영적 깊이로, 때로는 평면에서 물리적 공간으로, 고정된 대상의 주위와 그 이면을 상상하고 대상을 넘나든다. 그 경계에는 빛으로 물든 여백이 중간지대로 존재한다. 느린 시선은 스스로 공간을 변주하고 치환하며 또 다른 맥락과 해석을 엮어 나간다.


새로운 감각과 인식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예술작품과의 조응은 내 안에 내재된 감각의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이다. 조형요소들 간의 조형적 질서와 균형이 조화롭게 작동하고 살아 숨 쉴 때, ‘공간’은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된다. 예술적 창작과 감상은 감각의 차원을 열고, 감성의 교감을 갈망하는 순수하며 자발적인 행위이다. 내면세계의 깊이와 외연을 가늠하고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지각적 경험은 일상의 익숙함으로 무뎌진 나 자신을 비추며, 다시 한번 내가 좋아하는 감각을 찾아 나가는 소중한 순간이 된다.



황신원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큐레이터



† 

문화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인간의 경험을 강조하며 공간(space)과 장소(place)를 구분했는데, ‘공간’에 인간이 가치를 부여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경험과 삶, 애착이 녹아들 때 비로소 그곳은 ‘장소’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푸 투안, 「공간과 장소」, 2020, 사이


†† 

이중 지시(Double Deixis)는 화자나 서술자가 한 문장에 두 개의 시점 또는 관점이 동시에 존재하도록 사용하는 지시표현이다. 언어학이나 서사학 분야의 개념으로 모니카 플루더니크(Monika Fludernik)가 발표한 논문 <Towards a 'Natural' Narratology> (1996)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전통적 플롯 중심에서 벗어나 경험 중심, 인지 중심의 서사 분석을 가능하게 만든 주요 개념이다.


애나한 작가는 작가노트에 이 개념을 언급하면서, 하나 아닌 두 개의 시점이나 공간을 동시에 지시하고 중첩시켜 특정 시공간에 서사가 발생할 수 있는 맥락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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