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
2024.12.11 - 2025.1.12
Project 2. SO.S (Sarubia Outreach & Support)
조은영
Choey Eun Young Cho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 전시전경,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4.
(좌) Borrowed Time, 2024, audio documentary production, 13 min 19 sec. / (우) Lost Sound of Your Mother in Your Body, 2024, concrete, tanned salmon skin, 74×55×55cm.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 전시전경,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4.
(왼쪽부터) ... Shattering ..., 2024, oil on linen, 73.5×91cm. / ... ... ..., 2024, oil on linen, 61×61cm. / 우유, 2024, audio documentary production, 13 min 41 sec.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 전시전경,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4.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 전시전경,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4.
... Kvelling ..., 2024, oil on linen, 73.5×91cm.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 전시전경,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4.
SO.S(Sarubia Outreach & Support)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가 2015년부터 새롭게 시도한 중장기 작가지원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작품, 전시와 같은 창작의 결과물 이면에 감춰진 작가들의 수많은 시간과 노력, 과정 속에 큐레이터를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여 그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또 다른 발전 가능성을 모색함으로써, 작가의 창작활동을 중장기적으로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2023년 7월 공모를 통해 A, B, C 그룹 총 6인의 작가가 선정되었고, 이번 전시는 SO.S 2023-2026 프로그램의 진행결과를 보여주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피드백을 구하는 자리입니다.
B 그룹: “새로운 환경 속에서 네트워크의 한계를 느끼는 작가”
- 35세 이상 60세 미만의 작가 (1963년생-1988년생)
- 지역 작가 혹은 귀국 작가
1) 지역 작가: 서울과 경기도가 아닌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2) 귀국 작가: 해외에서 모든 학위를 마치거나 오랜 해외 체류로 인해 국내 미술계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고, 추후 한국에 거주하며 활동하고자 하는 작가.
- 개인전 3회 이상의 자격을 갖춘 작가
- 개인전과 단체전을 포함한 전시활동이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 (임의로 전시약력 편집 불가)
- 상업갤러리 전속작가 지원 가능
SO.S의 B 그룹 지원은 서울 중심의 미술계 시스템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와 오랜 해외 체류 후 귀국한 작가들이 느끼는 소통의 한계와 고립감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작가에게 창작 활동 전반에 대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소통과 작업의 정확한 위치를 인식하여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는 중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이러한 기회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에 적응하는 과정에는 다양한 난관이 존재하지만, 그간 네트워킹의 확장은 작가들이 열정과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간과되어 왔다. SO.S B그룹 프로그램은 한국과 서울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작가들의 창작 행보와 환경을 면밀히 분석하고, 심층비평 워크숍, 포트폴리오 리뷰 등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이들이 보다 적극적인 창작과 전시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주요 일정
2023.7 공모를 통해 1, 2차 심사를 거쳐 선정
2023.12 사무실 크리틱 - 사루비아 큐레이터
2024.6 전시기획 미팅 I
2024.10 전시기획 미팅 II
2024.12 심층비평 - 전시기간 중 진행
프로그램 참여 동기
한국에서 태어나 13세에 이민을 가면서 새로운 문화와 언어에 적응해야 했다. 외국어를 사용하며 한국어로부터 느끼던 위계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국경을 넘거나 언어를 번역할 때 발생하는 변화와, 두 언어적 정체성 사이에 놓인 세계를 탐구하며 새
로운 번역 방식과 단절된 언어들의 연결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작업이 한 언어의 사고에만 편중되어 있고, 번역을 통해 교차하는 언어들의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고민이 생겼다. SO.S 프로그램을 통해, 모국어임에도 오랜 시간 거리감을 느껴왔던 한국어를 새로운 조형적 번역 방식을 통해 실험해보고 싶다. 나아가, 작업을 통해 언어, 국적, 다양한 정체성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삶’이라는 흐름 속에서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공유해보고 싶다.
사루비아의 지원 방향
조은영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언어의 변화와 환경이 전환되는 순간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에 주목하며 작업을 전개해왔다. 가변적이고 비가시적인 언어를 작업화하는 과정에는 섬세한 감각이 요구된다. 여러 언어가 교차하고 변환될 때 발생하는 미묘한 어긋남을 작업과 전시로 시각화하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이 필요했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관계에 대해 심층적으로 이야기 나누고, 이야기의 맥락과 정보가 제거된 상태에서 드러나는 경험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 모색했다. 전시를 통해 파편화된 서사를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조성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고, 공간에 작업을 맞추기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에 맞추어 공간을 뒤틀어보는 시도를 제안했다. 작가가 지닌 언어에 대한 입체적인 감각을 극대화하고, 서로 다른 언어와 정체성이 공존하는 새로운 서사의 구조와 시각적 표현
방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작가가 수집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번역하여 확장하고자 한다.
언어로부터 미끄러지는 것들이 있다. 이름이 없는 감정들은 생생할수록 혹은 피부에 밀접할수록 명명되지 못한다. 작가들은 이렇게 언어로부터 탈각되는 것들을 모아 기어코 형체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작업은 작가의 언어이자 정체성이 된다. 작업은 작가가 스스로 구축한 언어의 근원을 마주하고 탐구하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최대한 투명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유동적인 존재 방식을 추구하는 과정에 가깝다. 조은영의 작업 또한 명료하기보다는 모호하고, 정착하기보다는 부유하길 택하며 가변적인 방식의 작업을 제안한다.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는 개념을 지양하고, 신체와 언어, 언어와 언어, 혹은 ‘나’라는 고정된 존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무는 자리에 따라 변화하는 정체성처럼 경계를 구분 짓는 요소들을 서로 부드럽게 잇기 위한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에서는 쉽게 형언할 수 없는 유기적 감각과 체화된 기억들을 조각, 오디오 다큐멘터리, 페인팅 등의 설치 작업을 통해 번역하고자 한다.
전시 제목의 'Body'는 한 사람의 신체나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부품을 뜻하기도 하지만, 공동체적 신념이나 단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It Never Came'은 물리적으로 도착하지 않았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모종의 사건이나 기대했던 일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새로운 몸을 주문했지만 도착하지 않았다"는 의문스러운 직역문이 되기도 하고, 영원히 붙잡을 수 없는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정체성을 은유하기도 한다. 언어의 이면에는 늘 체험으로부터 비롯되는 감각의 차이가 존재하고, 이러한 차이는 번역을 어긋나게 한다. 앞서 말했듯, 조은영은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치환되지 않고 남겨지는 미묘한 감각, 혹은 형태를 갖추지 않은 본능적이고 체화된 경험에 주목한다. 의도적으로 문장을 맥락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직역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오역을 은유로 소화하며 번역의 유기적 가능성을 실험해왔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표상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동하고 변화하는 감각의 흔적들을 드러낸다. 명료함보다는 애매모호함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언어와 언어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해 공간과 서사를 확장한다. 콘크리트는 물에 닿으면 단단해지지만, 비탄성적이고 인장에 약해 하중이 가해지면 균열이 발생한다. 언어도 견고한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분열한다.
사루비아에서 재생되는 여덟개의 비네트(Vignette)[1] 시리즈는 화자를 특정하지 않고, 누구든 이입할 수 있는 이야기로 확장하기를 시도한다[2]. 오디오 다큐멘터리는 작가가 수년간 한국과 미국에 계신 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조은영은 할머니들의 서사를 쪼개어 순서를 알 수 없도록 재조립하고, 자신의 서사와도 병치한다. 그는 “전체가 더 크고 부분이 더 작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이 모든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더 크다고 본다”[3]고 말했다. 덤덤한듯 서투른 글씨를 눌러쓰듯 읽는 낭독을 통해, 모든 이야기는 위계를 갖지 않고 동등하게 드러난다. 가부장적인 환경과 여성이 겪는 일들, 격동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가족을 잃은 이야기, 임진강, 네브래스카 헤이스팅스 농장에서의 시간들, 사투리에 대한 일화들, 우유를 짜는 경험과 자신의 이름의 근원을 이해하려는 시도 등,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라며 문화와 언어가 전혀 다른 두 할머니의 이야기들은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서로에게 스며들며, 미래 시제로 구전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화자가 남긴 메아리와 흔적의 상호작용을 통해, 듣는 이가 새로운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맥락을 떠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몸을 통해 발화하기에 비교적 본능적이고, 글이 남기지 못하는 미세한 감각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작가는 오디오의 자막(텍스트)을 제공하지 않는다. 바람처럼 흘러가듯 청취한 내용 속에서 유난히 생생하게 들리는 문장들이 있기를 기대하고, 발화를 또 다른 시작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생성되도록 맥락을 유연하게 열어둔다. 8개의 오디오 다큐멘터리는 화자를 드러내지 않고, 끊임없이 맥락으로부터 벗어나며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희미하게 한다. 두 할머니의 이야기는 작가를 매개로 한 자리에 겹쳐지고, 세 여성의 서사는 내밀한 개인의 이야기이면서도 직간접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인간사의 흐름을 드러낸다. 과거의 사건들은 기록과 구전을 통해 다시 발화되고, 간접적으로 경험된 과거는 형체가 없는 미래에 스며들어 너와 나를 구분 짓는 시제와 경계를 지운다. 모든 시간은 과거이자 현재이고, 동시에 미래로서 연결되어 있다.
번역될 수 없는 미세한 감각을 드러내기 위해, 조은영은 유기적이고 본능적인 감각에 집중한다. 개인에게 부여되는 문화적, 사회적 체계나 역할로부터 벗어나, 외부적으로 부여된 정체성에 기대지 않고 보다 본능적이고 체득된 경험에 집중하며 작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엘렌 식수(Hélène Cixous)의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는 성역을 나누기 위함이라기 보단, 보수적인 언어 구조와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몸의 감각과 비언어적 경험을 글쓰기 안에 스며들게 하는 방식을 말한다. 구조와 맥락을 모호하게 하고, 언어 이면에 달라붙어 있는 미세한 감정과 체화된 경험에 집중하는 조은영의 작가적 태도는 이러한 '여성적 글쓰기'의 실천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비네트 작업과 더불어 공간의 곳곳에 배치된 회화 작업은 언어의 체험적인 부분에 집중하며,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맞붙이는 방식으로, 몸을 통해 우러나오는 감각을 따르며 그려졌다. 이러한 그리기는 발성이나 억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몸이 인지하는 감각을 드러낸다.
조은영의 작업에서 서사들은 단순히 나열되거나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품고 파고들며 말려드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이야기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치환을 넘어, 서사가 서로를 감싸고 내밀하게 중첩되며 깊이 쌓여가는 과정을 드러낸다[4]. 주머니를 뒤집어야만 보이는 심지처럼 직관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연결되는 의미를 떠올리며, 번역될 때마다 새로운 요소와 이야기가 드러나기를 기대하며 번역 작업을 진행한다. 이런 방식의 번역은 고정된 의미 대신, 언어 사이에 잔여하는 감각과 감정, 그리고 본능적인 경험들을 포착해내는 데 중점을 둔다. 그의 번역 작업은 단순히 두 언어를 잇는 행위를 넘어, 언어와 서사가 끝없이 접히고 열리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구전된 과거를 기억하는 일과 미래를 기대하는 일은 맞닿아 있다. 우리는 살아있음과 동시에 죽어간다는 식수의 말[5]처럼, 시작과 끝은 삶이라는 연속성 안에서 늘 공존한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도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고, 겪어보지 않고도 슬퍼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번역은 특유의 어긋남을 통해 이야기를 확장한다. 전시장에 흐르는 이야기의 물줄기 속에서 잠시 쉬어가며, 발화하는 목소리를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여 마음속에 담아보자. 그럼으로써 고립되는 부분 없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문소영 │ 사루비아 큐레이터
[1] 비네트(Vignette, 小品文)는 짧은 시퀀스나 에피소드 형식이 모여 하나의 전체적인 서사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독립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연결되는 구성을 뜻한다. 혹은 영상에서 화면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전환되는 효과를 뜻하기도 한다.
[2] “This new method of translation will conjure up languages that belong to no one and everyone”, 조은영 작가노트. (2024)
[3] 조은영 작가노트
[4] 데리다(Jaque Derrida)의 함입(Invagination) 개념을 참고한다. ‘함입’은 표면의 일부가 내부로 파고들어가 새로운 층을 만드는 형태를 말한다.
[5] 엘렌 식수,『야아이!문학의 비명-제안들 32』(이혜인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2, p.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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