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야기
Unfolded
2023.3.15 - 4.14
Project 1. 전시후원작가
임노식
Nosik Lim
《긴 이야기 Unfolded》 전시 전경
Unfolded, 2023, acrylic and oil on canvas, 25pcs., 153×90cm each
Unfolded, 2023, acrylic and oil on canvas, 25pcs., 153×90cm each
Unfolded, 2023, acrylic and oil on canvas, 25pcs., 153×90cm each
Unfolded, 2023, acrylic and oil on canvas, 25pcs., 153×90cm each
Unfolded, 2023, acrylic and oil on canvas, 25pcs., 153×90cm each
Unfolded, 2023, acrylic and oil on canvas, 25pcs., 153×90cm each
Unfolded, 2023, acrylic and oil on canvas, 25pcs., 153×90cm each
《긴 이야기 Unfolded》 전시 전경
회화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임노식 작가는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답한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수없이 자신에게 던졌을 질문이었음에도 모호한 답변에 그친다. 작업을 선보인 지 10년이 채 안 되는 작가에게 섣부른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전시는 작업의 터닝 포인트를 찾고 있는 작가에게 이 질문을 생각할 수 있는 시점과 공간을 제시하였다. 스스로에게 그림의 본질과 태도를 되묻고 매체를 고민해 온 시간, 그리고 수집해 온 소재, 장소, 사건 등을 돌이켜 보며 이것들이 과연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그 의문을 풀어내면서 ‘긴 이야기’는 펼쳐진다.
긴 이야기에는 줄거리가 없다. 그림 속 이야기는 함축되어 담담하고 내밀한 조어 (造語)로 기술되었다. 그래서 이야기로 건져 올린 불분명한 수집물들의 경계는 멀겋게 희석되었고 내면의 소리를 찾고자 한다. 작가는 6개월 동안 캔버스 25개를 펼쳐놓고, 화면 전체를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단계적으로 쌓아 올리는 수행의 과정을 실행하였다. 얇은 켜들이 겹겹이 축적되어가는 동안, 그는 지금까지 이어진 개인적인 서사와 감정들이 이 안에 봉합되는 것을 목도한다. 더 나아가 비가시적인 요소를 파편화된 시각적 재현의 영역으로 구축해가며, 화면에 모인 각각의 모티프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또 하나의 서사로 거듭났다.
작가는 25개의 동일한 크기의 작품이 공간에 펼쳐지며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전시 풍경을 의도했고, 보는 이가 상상하고 느끼는 것에 따라 모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처음부터 설정했다. 작품이 작가의 창작을 떠나 다른 영역으로 이동했을 때, 보는 이의 생각과 태도를 담아낼 수 있는 여백과 쉼이 필요했다. 그림에서부터 이러한 시선은 반영되었다. 과거에는 뚜렷하고 명시적인 것들이 시간에 의해 퇴화된 것처럼 끊어진 이야기가 되고, 때로는 모호하고 불명확한 그림들이 어렴풋한 연결고리를 내포한다. 작가는 그 연결점을 그림과 그림을 잇는 ‘간(間)’으로 간주하며, 전체를 하나로 잇는 매개의 통로로 열어두었다.
“모든 것이 미세하게 그곳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각각에 집중할수록 그곳과는 멀어진다.” 작가노트에 담긴 작가의 생각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직사각형의 네 벽면에 작품들은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작업실에서 순서 없이 진행되었던 제작 과정처럼, 작품들은 전시장에 옮겨진 순서대로 벽면에 걸었다. 이야기의 흐름, 작가의 의도, 회화적 개념, 조형적 효과, 관객의 시선 등 가능한 주관적인 감각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무작위로 배열된 작품들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루도록 연출하였다.
쉼 없이 열정적으로 달려온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비워진 것들에서 답을 찾는’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무엇보다 인식의 대상이 외연의 풍경에서, 모호한 내면의 세계로 향한 변화의 지점을 엿볼 수 있다. 정면으로 나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느낀 부담과 고민을 작업에서 온전히 삭이면서 회화작가로서의 자의식 또한 한층 두터워졌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회화란 무엇인가를 반문한다. 명확하게 단정 지으면서 사라지는 모호한 것들의 가능성이 임노식 작가의 작업에는 계속 열려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관훈|사루비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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