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현재전시


저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 

Where Does the White Go When the Snow Melts


2025.4.16-5.16

Project 2. SO.S (Sarubia Outreach & Support)

김지현

Jihyun Kim



SO.S(Sarubia Outreach & Support)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가 2015년부터 새롭게 시도한 중장기 작가지원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작품, 전시와 같은 창작의 결과물 이면에 감춰진 작가들의 수많은 시간과 노력, 과정 속에 큐레이터를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여 그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또 다른 발전 가능성을 모색함으로써, 작가의 창작활동을 중장기적으로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2023년 7월 공모를 통해 A, B, C 그룹 총 6인의 작가가 선정되었고, 이번 전시는 SO.S 2023-2026 프로그램의 진행결과를 보여주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피드백을 구하는 자리입니다.


A 그룹: “또 다른 창작의 돌파구가 필요한 중진작가”


- 46세 이상 60세 미만의 작가 (1963년생-1977년생) 

- 개인전 5회 이상의 자격을 갖춘 작가 


SO.S의 A그룹 지원은 국내 미술계 시스템의 전반적인 균형과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해서 반드시 중견작가 지원이 절실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오랜 활동을 통해 물질적 또는 심리적으로 창작의 희로애락을 맛본 중진 작가들에게 창작의 즐거움과 의미를 되짚어 줄 수 있는 계기는 매우 중요하다. A그룹 프로그램은 급변하는 시각 환경의 흐름과 속도에서 벗어나 주류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거나, 창작의 위기 또는 작업 자체의 매너리즘을 고민하는 작가들, 지금껏 나를 규정지어 온 작업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려는 작가들, 작가주의적 태도를 지향하며 구축한 자신만의 작업세계가 미술 제도권에서 제대로 소통되지 못하고 있는 작가들을 위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진솔한 대화를 시작으로 예전과는 다른 나 자신, 그리고 새로운 작업의 실마리를 함께 풀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요 일정

2023.7     공모를 통해 1, 2차 심사를 거쳐 선정

2023.11    작업실 크리틱 I

2024.5      작업실 크리틱 Ⅱ

2024.11    작업실 크리틱 Ⅲ

2025.1      전시진행 미팅 I 

2025.3      전시진행 미팅 Ⅱ

2025.4      심층비평 진행 및 평론글 의뢰


프로그램 참여 동기

삶의 부침을 겪으며, 주어진 여건에 맞춰 소소하게 전시를 이어왔다. 내가 치열하게 살아온 30, 40대의 세월은 경력으로 남길 명분이 없는, 수치화가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매일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일상에 틈을 만들며, 작업을 하고 전시를 간간이 꾸려왔다. 나는 이 평범한 삶의 시간이 썩어버리지 않고, 제대로 익어가기를 기대한다.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예술과 예술이 단절되지 않았다는 흔적을 SO.S 프로그램에서 확인하고 싶다. 세월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과 온도를 바꾸었고, 내 그림도 변하고 있다. 식지 않는 그림에 대한 열정과 창작의 즐거움으로 스스로를 북돋우기보다, 이제는 미술 현장에서 작업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동력과 공감대를 찾고 소통하며 나누고 싶다.


사루비아의 지원 방향

전형적인 유형의 풍경화에 머물지 않도록, 작가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대화부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해온 삶과 예술의 관계를 주목했 다. 작가가 지닌 생태·환경주의적 사고와 태도는 풍경 속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남다른 감응을 형성하고 있었다. 더욱이 문학적 감수성과 시적 상상력은 내재된 주관적 경험을 통해 회화적 리얼리티에 다가갈 수 있는 촉매가 되었다.

풍요로운 원천에 비해 작가의 조형적 태도와 기법은 시시 각각 변하는 자연을 회화적 시공간으로 옮기기에 한계를 드러냈다. 창작의 과정은 치열하게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다양성과 폭을 확장하는 조형적 시도에 머물렀다. 작업이 시를 쓰는 과정과 닮아있다고 생각하는 태도 또한 창작의 단초를 제공하지만, 심층적이고 본질적으로 회화 매체에 대한 사유와 조형적 실험의 해법이 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주변적 이미지를 재발견해 흔히 관찰되지 않는 흔적이나 기억, 찰나의 시공간을 화면에 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가 내면의 고유의 감성과 예민함이 전달되어야 한다. 익숙함을 떨쳐 버리고 미묘한 차이가 발생시키는 감각에 집중하며 여백과 멈춤의 조절이 작업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순간 그리고 눈 이외의 감각이 살아나는 미묘한 세상이 시각 너머의 풍경으로 펼쳐지는 순간이 작가에게 필요했다.


시간은 그림과 같아 
반은 물이 그리고 
반은 내가 그린†


봄이 시작된 요즘, 유독 연두 빛이 눈에 들어온다. 흰빛의 눈이 녹은 뒤 나타난 빛깔이다. 빛의 변화는 시간을 만들었고, 모든 생명과 자연은 빛으로 인해 변화한다. 시각예술은 빛과 시간, 자연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다. 창작의 태도와 방향 또한 이 인식에서 비롯된다.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자연을 통해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작업은 삶의 깊이를 드러내고 예술가 본연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예술적 창작과 삶의 외연이 얼마나 일치하는가. 삶과 예술의 조화와 균형은 세상과 나와의 관계, 나아가 예술가로서의 존재, 본질의 문제가 된다.

 

자연은 작가 김지현의 삶의 시공간 속에서, 고민의 방향과 깨달음의 길을 제시했다. 발견하고 관찰한 자연의 현상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감정을 이입하며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문학과 시에 담긴 생태적 감수성은 자연과 환경을 품고 사는 마음을 환기시키며 그림을 그리는 의미와 삶의 가치에 질문을 보태었다.


 

회화는 보이지 않는 본질을 재현해 내는 일이다. 형태 없음의 형상,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의 흔적을 기록하는 일. 나는 그것을 발굴하는 자세로, 녹아 사라지지 않고 흰빛이 끝내 도달한 자리, 그 지속의 증거를 그린다.

 

이름 붙일 수 없는 풀의 숨결, 돌봄 없이도 자라나는 생명의 기세, 경계를 넘는 서식의 습관들. 그것들은 언제나 언어의 바깥에 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가장자리에 선다. 풍경의 경계, 사라질 수 없는 것들이 잠시 형상을 빌려 남긴 흔적을 따라 조용히 어슬렁거린다. 언어에 닿지 않는 생명의 기척, 말보다 먼저 도착한 감각을 따라가며 나는 그것을 표면 위에 남긴다. 회화는 그 누락된 자리를 응시하는 일이다.  


김지현 작가노트

 

작가가 맞닥뜨린 언저리의 풍경은 시작과 끝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다양한 시간이 머물고 생태순환의 에너지가 넘치는 장소로, 가시적 영역 너머의 내면으로 눈이 적응하기 시작하면 생명력이 넘치는 미묘한 세계가 펼쳐졌다. 자연현상 속에서 시공간의 경계는 순환의 정점을 이룬다. 순간적인 생동과 활기가 치솟고 동시에 사그라드는 양가적인 가치가 공존하기에 오묘하고 신비롭다. 사라지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다면적인 형상과 다양한 질감에 시각은 빠져든다. 어둠이 내린 숲, 모든 것이 평등해 보이지만 작은 차이에도 오감이 예민해지는 시간이다. 빛에 반응하는 작은 몸짓들,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 색다른 형상을 띤 유기체, 윤곽을 무너뜨리는 역광, 녹아내리는 눈, 허물어지는 흙, 모든 장면들은 빠른 순간에 긴 응축의 시간이 담겨있다. 영원할 수 없는 것들의 흔적, 생장과 소멸이 발생하는 곳에서 작가는 자연의 형태 없는 형상에 감성을 입히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순간들을 그림이라는 물질로 기록한다.

 

흰빛의 캔버스 표면에 좋아하는 감각과 대상, 자아가 조응하며 회화적 제스처로 재해석된다. 발현된 심상은 대상에 대한 시선의 거리와 몰입의 정도를 되묻는다. 보이는 대상의 그리기(재현)를 멈추고 그 대상의 본질을 찾는 행위로 일체의 시공간을 만드는 과정이다. 오감을 일깨우는 붓질에는 빠른 시간과 느린 시간이 공존한다. 기억하며, 채우고, 지웠다가, 기다리고, 생각하며 머무는 시간이 거듭된다. 친밀한 거리에서 세심한 눈길이 가닿은 곳으로부터 역동적인 다채로움에 이끌렸던 풍경까지 여러 감정의 추이를 떠올린다. 대상을 온전히 느끼고 교감할 수 있도록 감각의 크고 작은 정도가 회화의 몸짓이 되어 다양한 붓질과 톤으로 감정을 만들어 낸다. 시점과 구도, 색채, 붓질, 이 모든 조형적 언어가 축적된 작가의 시간과 공간을 드러낸다. 이입된 감각들, 감응이 불러일으킨 의미까지 회화와 기억 속의 시공간이 하나로 얽히며, 회화적 시공간은 영원히 지속된다.

 

물은 계속 흐르고, 얼음은 녹고,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이렇게 연결되고 생성과 성장, 소멸을 거쳐 순환한다. 풍경 속 개입은 그곳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 몸의 움직임, 감각들, 내가 보낸 시간을 담고 있다. 작가는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빛의 변주를 즐겼고, 공기와 바람. 온도와 습도, 흙과 물, 풀 내음을 맡고, 소리를 들으며 그 장소는 상황이 되어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어찌 보면 자연 속에서 나 스스로를 투영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 위해 쉼 없이 걸어온 시간들이다. 자연과 빛은 시간의 흐름 속에 미약한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흔적을 남긴다. 반은 존재 그대로의 고유함으로, 반은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미세한 손길로 이 흔적들은 그림이 되었다. 자연은 어쩌면 말 없는 삶의 거울이었다.


황신원 │ 사루비아 큐레이터

  


† 아이슬랜드 시인, 스타인 스타인나르(Steinn Steinarr, 1908-1958)의 시집 <Tíminn og vatnið(Time and Water)>(1948)에 수록된 시 "Time and Water" 중에서 인용


†† "저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Amelie Nothomb)의소설 <오후 4시(Les Catilinaires)>(1995)에서 인용. "Quand fond la neige, où va le blanc?" 의 번역. 이 소설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문장으로 언급되었으나, 출처는 밝혀지지 않음




SO.S 2023-2026 참여작가


A 그룹      김지현

B 그룹      민혜령 조은영 지선경

C 그룹      애나한 임지민